인식 전환, 마틴 루터 킹이 꿈꾸었던 원칙
이주성 2013-01-21 150
1918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의 포로가 된 독일군은 백인 막사에서 식사를 하였지만 같은 미군의 흑인들은 백인 막사에서 식사하는 것은 물론 출입도 금지 되었다.
1955년 미시시피에서는 14세의 흑인 소년이 백인소녀에게 인사말을 했다는 이유로 두 명의 백인에게 끌려가 살해되었지만 두 명의 백인은 무죄를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1863년 노예 제도가 폐지되고 100년이 지난 후에도 미국 여러 주에서는 흑백 분리 법이 있어 흑인은 백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찻집에 들어갈 수 없고, 백인이 다니는 교회에 갈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흑인들이 백인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인사의 표시를 하는 사회적 습관 조차도 범죄처럼 여기어 누릴 수 없게 했다.
마틴 루터 킹은 1955년 12월 앨라바마주의 로자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의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을 계기로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조직하여 흑인들에게 자신들이 존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인권운동을 시작하였다.
마틴 루터 킹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위는 백인 인종 차별자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협박 편지와 전화를 받고 그의 집은 폭발물로 폭파되었다. 흑인들은 무자비하게 공격당하였고 어린 소녀와 임산부까지도 심하게 구타당하고 총상을 입었다. 흑인들의 교회 건물도 불태워졌지만 체포된 백인들 대부분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1964년에는 흑인의 투표권을 주장하던 세 사람이 경찰에게 살해되었지만 한 명은 무죄로 풀려났고 다른 한 명은 고작 6년형을 받았다.
1964년에는 흑인의 투표권을 주장하던 세 사람이 경찰에게 살해되었지만 한 명은 무죄로 풀려났고 다른 한 명은 고작 6년형을 받았다.
흑인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운동을 하던 마틴 루터 킹은 1968년 4월 어느 백인이 쏜 총알에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마틴 루터 킹이 했던 연설처럼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모든 인종차별법과 제도가 폐지되었다.
사회학자 마이클 왈저는 사회적인 관행, 심지어는 법이나 계약 같은 것도 특정 시기에 특정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이해관계일 뿐 그것이 반드시 보편적인 원칙이나 도덕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바람직한 리더라면 이러한 사회적 통념들을 초월하여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보편적인 원칙을 추구해야 하고, 리더십은 그러한 역량을 갖추는 문제라 할 것이다.
해당 게시물이 '자유게시판(시청)'에서 이동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