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수 밖에...
김용건 2014-04-19 472
세월호 침몰 사건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어두운 선실에 갇혀 차가운 물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 어린 학생들, 그리고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을 부모들…
세월호가 좌초되고 완전히 뒤집혀서 침몰되기 까지 2시간여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육지에서도
멀지 않았고, 배 주위에는 수많은 함정들이 구조하기 위해 벌 떼 같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 있는 건지…
우선 첫 번째로, 선장이 보여준 태도는 그야말로 후안무치, 무책임의 극단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선장은 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선원에 대한 지휘명령권, 탑승인원에 대한 징계권과 강제조치권, 심지어는 사법경찰관으로서의 권한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선장에게 이런 강력한 권한을 주는 이유는 승선자의 안전을 위해서이며, 권한에 비례해서 선박 위험시의 조치의무와 선박충돌시의 조치의무 등 승선자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법상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내 방송을 통해서는 승객들에게 탈출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방송을 1시간 가까이 하도록
하고는 선장이 제일 먼저 탈출해버리는 어이없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한마디로 선장에게는 자기 희생의
정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선장만 그런 걸까요? 소위 우리나라 상류층들이란 사람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기는 한 걸까요?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하면 병역미필,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를 안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재벌 회장치고 비자금이나 횡령 배임 뇌물 등으로 전과자 아닌 자를 찾기가 어렵고, 정치인들은 국가나 국민보다는 파당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총체적으로 우리나라 상류층들은 벼락 졸부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이런 썩어빠진 상류층들이 과연 국민들 앞에서 솔선수범해서 전쟁에 참여하여 목숨을 걸고
국민들을 이끌 수 있을까요? 아마도 세월호 선장같이 국민들 내팽개치고 도망가기 급급할 겁니다.
두 번째로, 우왕자왕 지휘통제의 혼란이 심각합니다.
대통령이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니까, 해경, 공군, 해군, 특전사, 해병대에 행정선까지
총동원되어서 세월호 주위에 개미떼처럼 몰려 들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누가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 체 우왕좌왕하기만 하고,
가장 기본인 생존자 통계나 승선자 숫자조차 사고 발생 후 7시간이 다되도록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고,
중앙대책본부의 안전행정부 차관이란 작자는 브리핑을 한답시고 기자 앞에 나와서는 기자가 질문할 때마다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옆에 있는 부하 직원을 쳐다보거나 추후에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더군요. (몽둥이로 그 차관이란 놈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2시간여 기회가 있었는데, 그 누구도 배 주위에 몰려든 구조인력들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해서 배 안에 남아있는 생존 인력을 구출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대통령이 한 사람의 승객도 희생되지 않도록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의미는, 육해공군에 행정선까지 벌떼같이 사고 선박주위에 몰려들어 구경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걸고 배 안에 갇혀있는 승객들을 구조하라는 의미인데, 늦게 출동해서 책임주궁 당하는 것만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배가 가라앉기 전 2시간여 동안 수수방관만 하더군요. 대통령이 악쓰고 소리질러도 하는 척만 한 겁니다.
배 한 척이 침몰해도 국가의 지휘통제 계통이 쑥대밭이 되어 버리는데, 도대체 전쟁이 터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눈앞이 깜깜합디다.
세 번째로, 승객을 구조하겠다고 몰려든 군경인력들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수많은 함정들이 우글대고, 해경특공대, 해군 UDT, 육군특전사 특임대까지 “특수”자를 앞에 단 수많은 구조인력들이 몰려 들었습니다만, 그저 선박 주위에서 마치 이삭줍기를 하듯이 이미 배에서 탈출한 승객들을 건져올리는 일만 하고 있더군요. 배가 기울어진 채 2시간 가까이 떠 있었는데 온갖 “특수”글자를 앞에 달고 있는 그 누구도 배 안에 진입해서 갇혀 있는 승객을 구조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군경은 비상시에 자기 목숨을 버려서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데… 제 눈에는 그런 결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 주위에 고무보트 타고 옹기종기 모여서 이미 어선들이 대부분 태워가버린 탈출승객을 찾느라 두리번 거리기만 하고… 왜 그 시간에 선박에 진입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요?
위에서 지휘통제계통이 우왕좌왕하느라 올바른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면, 현장에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군경 특수부대 구조요원들이 현장상황에 맞게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던 걸까요?
우리나라 최정예의 특수부대원도 이 지경인데, 전쟁이 나면 일반 군인들이 이보다 더 잘할 수 있기는 할까요? 지휘계통 무너지면 그저 눈뜨고 지시가 내려오기만 기다리다가 적들에게 학살당하거나 포로가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보고 있자니, 배 한 척이 침몰해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도 없이 엉망진창 개판이 되어 버리는데 전쟁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 앞이 깜깜합니다.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의 가치관이 너무 천박한 것은 아닐까요?
전쟁 발발 가능성을 너무 낮게 보고, 실제 상황에 대한 대비가 너무 허술한 것은 아닐까요?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빌고 있어야 하나요? 그래서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비굴하게 참아야 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