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동 춘천시립요양원 고맙습니다.(둥지)
이응철 2013-06-20 1324
둥 지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춘천시후석로326번길 13, 202-1106)
장인어르신의 고향은 이북 평안북도 희천이시다.
한국동란 때 남하하시어 늘 고향을 그리시다가 올해 아흔을 넘기셨다.
매주 월요일 가요무대 시간에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라는 꿈에 본 내 고향이 나오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장인어른이시다.
그런 아버님이 이젠 고향에 안주하셨다. 오는 7월이면 이곳 석사동 춘천 시립요양원에 거하신 지 2년째 되어간다. 아버님은 이곳이 본향이라고 확신한 것은 이달 초였다. 늘 아픈 다리가 완쾌되면 집으로 간다는 한줄기 희망에 종지부를 찍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불원천리가 아니고 지척이 집이라 그러하겠지만 아버님은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연일 흡족한 표정이셨다. 수녀님과 직원들은 그래서 항상 스마일 할아버지라 부르신다.
장인어른은 건재하시다. 지천명에 서릿발 같은 풍이 옧죄어 눈이 내리고 낙엽이 흩날려도 빗자루 한번 들지 못하신다. 문밖출입 없이 오랫동안 방안에서 최소한의 몸짓으로 강물처럼 밀려오셨으니 그 생이 오죽하셨을까?
종일 어르신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여섯 명의 칼레의 시민상을 모두 흉내 내시며 하루를 서산에 골인시키셨다. 사계절이 방안에서 스쳐간다. 불안과 공포 그리고 체념 속에서 꺼져가던 불꽃이 타오른 것은 안마산 요양원에 안기면서부터였다.
친절한 직원들, 지극히 청결한 요양원 구석구석,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2년간 몸담은 장인어른은 본향에 당도하신 것이다. 그래서 항상 장인어른은 미소 짓는다. 며칠 전이었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련다. 집에 돌아가지 않으련다. 그러니 어머님을 잘 모시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 내 물건은 팔아 없애라.
통일 되면 간다는 희천이 바로 여기로 낙점을 찍으신 것이다. 고맙다. 넘실대는 녹음방초 안마산 품에 폭 안긴 춘천시립요양원에 감사드린다. 지극히 청결하고 더없이 맑은 이곳은 노인 천국이다. 원장수녀님을 비롯해 영혼을 맑게 해주시는 수녀님 세 분이 불철주야 거칠게 달려온 고령의 마라톤 주자들의 전신을 감싸는 손길 또한 아름답다.
어제 면회 갔을 때였다. 잇몸을 드러내시며 환히 미소 짓는 수녀님께서 바투 다가서 뜬금없이 날린 제안에 필을 받았다. 노인들께 사인펜을 들어 소중한 추억의 보고를 서슴없이 한 줄 보석처럼 쏟아놓을 프로그램에 선생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놀랐다. 어쩜 주자의 결승 한계선에서 다시 뛸 수 있는 계속성을 부여하는 채찍이 더없이 숭고하다.
이런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 수녀님의 다양한 사업 안내가 주목을 끈다. 건강, 재활, 문화, 상담, 여가 종교, 효(孝)프로그램들이 어르신께 물결쳐 온다. 간간히 아내와 이곳을 찾을 때면 전시 또한 새롭다. 노인 분들이 정성껏 그린 크레파스화와 종이접기는 분명 신선의 손길이다. 나이 들면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돌아감을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언제 날개를 달고 승천할지 모르는 노인 분들, 누가 보육원이 양로원보다 더 희망차다고 했던가! 생을 투영한 그림들이 영혼의 빛을 발하니, 사정없이 닫힌 이기적인 세인들도 서둘러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항상 새로운 프로그램을 잉태하신다. 비단을 직조하시듯 수녀님이 계심에 어르신들의 말년은 외롭지 않다. 수녀님의 미소와 옥양목처럼 티없이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 꺼져가는 생명들은 다시 용트림한다. 이런 복지시설이 천배 만 배 나비효과처럼 번진다면 그 누군들 고령화를 두려워할 것인가! 복지정책의 모델케이스인 이곳 안마산 양로원을 자신있게 자랑하고 싶다. 진정 이곳이 장인어른이 마지막 둥지를 튼 본향임이 틀림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