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찬 이야기길
강남동 명소 강남동 2026-01-20 11
청오 차상찬 선생(1888~1946)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운동가
#최고의 잡지 언론인
#어린이 운동가
#70여개의 필명으로 1,000여편의 글을 남긴 문필가
<차상찬 이야기길>
① 봉황대길(공지천교~의암공원~춘천mbc~봉황대)
② 선돌고개길(공지천교~삼천동사거리~선돌고개)
③ 강창골길(자라우마을~강창골길~봉황대)

청오 차상찬 선생은 춘천시 송암동 자라우마을에서 성장했다.
어린 나이부터 한문을 공부했으며, 아홉 살 때 마을에 온 일본 사진사와 한문으로 필담을 나눌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1904년경 차상찬은 천도교에 입교하고, 서울로 올라가 1906년 보성중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 최초의 학생 잡지인 『보중친목회보』를 편집하고 강원도 출신 유학생의 모임인 '관동학회'창립을 주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1913년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3·1 운동 이후 차상찬은 천도교 청년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민족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6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합 잡지 『개벽』을 펴냈다.
전국 순회강연회 강사로 나서서, 조선의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으니,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주제로 강연했고, 여성 교육과 사회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차상찬은 어린이 운동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21년 천도교 소년회 창립을 추진하고, 1922년 방정환, 김기진 등과 함께 지도위원이 되어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제정했다.
또한 어린이 음악회, 동화회 동요회, 야유회, 세계아동예술전람회 등 다양한 어린이 행사에 참여했다.
개벽사 대표로서 『어린이』 잡지 발간을 끝까지 지켜냈으며, 주요 필자로서 역사 동화를 자주 발표했다.
당시 개벽사 잡지들은 총독부의 혹독한 검열에 시달렸는데, 검열난,원고난 등 때문에 차상찬은 청오,첨구생,관상자,송작,수춘산인 등 70여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하였으며, 역사,민족,세태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1,000여 편 남겼다.
*청오 차상찬 선생의 동상
차상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2015년 춘천시 공지천 조각공원에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차상찬의 문필활동(개벽사의 잡지 발간)
『개벽』,『어린이』,『신여성』, 『별건곤』,『혜성』『제일선』등
*차상찬의 주요 저서
『청오시고』,『청오만록』,『조선 민요집』, 『조선사천년비사』,『해동염사』『조선백화집』,『한국 야담사화』등
*'자랑스런 강원문화인물(2004)'로 선정, '은관문화훈장(2010)'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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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