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한의 현장스케치
6·25 참전유공자 기념탑 제막식
- 작성자남이진
- 등록일2025-04-07
존경하는 6·25 참전유공자 여러분, 그리고 내외빈 여러분. 춘천시장 육동한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6·25 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멀리서 와주신 손희원 6·25 유공자 협회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강원도지부장 박영택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오진영 국가보훈부 보훈문화정책실장님 고맙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평생을 6·25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한 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그는 곧장 춘천고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세웠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단호히 뜻을 밝힌 뒤, 주저 없이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충분하지 못한 훈련을 마친 채 곧바로 치열한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 속에서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며, 끝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의를 더욱 깊이 다지게 됩니다.
그날 이후, 6·25는 그의 삶 전체를 이끄는 뿌리이자 중심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봉사와 국가안보, 그리고 후세를 위한 일에 묵묵히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장학금도 기탁하시고 어려운 이를 위해서 평생을 나누고 도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마음이 이어진 삶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오랜 시간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6·25 참전 기념탑 건립이었습니다. 춘천은 춘천대첩의 성지이자 전쟁 초기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습니다. 바로 그 곳에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탑이 없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그 길을 더 강하게 나서게 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마음을 다졌고, 필요하다 생각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발걸음을 옮겨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혹여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탑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매일 걱정하며 애타는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정성과 열망은 마침내 하늘에 닿았습니다. 작년 2월, 비로소 기념탑 건립이 확정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가 흘리신 감격의 눈물은, 지금도 제 가슴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기념탑 건립이 논의되던 초기부터, 그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일인 양 정성을 다해 챙기셨습니다. 탑의 디자인에도 그의 구상과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매일 현장을 찾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염원 속에 기다려 온 바로 오늘을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바로 제 앞에 계신 염기원 회장님이십니다. 바로 이 자리를 있게 만드신 주인공이십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 탑이 곧 염기원이고, 염기원이 곧 이 탑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참전용사 여러분. 여러분 하나하나가 염기원입니다. 그리고 이 탑에는 3,256분의 참전용사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과 열망과 나라 사랑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탑이 소중합니다.
이 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닙니다. 한 세대가 남긴 책임의 기록이자, 시간 위에 세워진 존경의 증표입니다. 염기원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참전용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바칩니다. 그리고 이 탑을 찾는 모든 이들이 여러분들의 희생과 나라사랑을 배우고 기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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