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현충일 추모식
존경하는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춘천시민 여러분!오늘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제70회 현충일.올해는 그날을 기억해 온 시간이 어느덧 일흔 해가 되는 해입니다. 숫자가 쌓인 만큼, 우리의 기억은 더 깊어져야 하고 그 뜻을 이어가는 마음은 더욱 단단해져야 합니다.세월이 흐를수록 희생과 헌신의 의미는 더 또렷해집니다. 오늘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지켜준 이름들을가슴 깊이 되새기고 다짐하는 날입니다.나라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목숨을 걸고 이 땅을 지켜주신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평화와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희생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가능케 한 뿌리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빛입니다.한강 작가는 “죽은 이들이 산자를 살린다.”라고 말했습니다.국가유공자 여러분, 보훈 가족 여러분.여러분의 고귀한 헌신은 춘천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6·25전쟁 당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춘천대첩의 승전 기록, 그리고 지난 3월, 3,286분의 참전유공자를 기리며 세운 기념탑은 모두의 자긍심이자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그날의 춘천에는 나이도 계층도 성별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이 되었습니다.그 정신이 지금 이 자리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이 기념탑이 세워지기까지는 6·25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오신 한 분의 헌신이 있었습니다.춘천대첩의 성지에 숭고한 희생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날마다 마음을 다해 힘써주신 분. 바로 염기원 회장님이십니다. 기획부터 완공까지 세심하게 살피시고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회장님의 진심과 열정에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존경하는 시민 여러분.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기후변화와 새로운 형태의 국제정세 불안정, 세대 간의 단절과 사회적 갈등은 우리가 지켜온 평범한 일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다시 ‘애국’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와 ‘공동체’라는 말의 책임을 되새겨야 합니다.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일은 결코 과거만을 향한 손짓이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미래를 단단히 준비하는 일입니다.춘천시는 언제나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우리 도시가 품격과 배려를 갖춘 공동체로 나가도록 더욱 세심히 살피겠습니다. 더 자주 찾아가고 당신들의 손을 잡겠습니다.실제로 얼마 전, 염기원 회장님께서 제게 조심스레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6·25 참전유공자 기념탑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대부분 고령이신 만큼, 평화공원 버스정류장에서 기념탑까지의 200m 거리가 쉽지 않다는 염려였습니다.기념탑을 향한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 뜻을 더욱 존중하고 편히 모실 수 있도록 춘천시는 7월 중으로 기념탑에 별도 버스정류장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실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모두가 염기원이십니다.그래서 단 한 분의 기억도 놓치지 않고,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외롭지 않도록 올해 추념식을 세심하게 준비했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께서 불편함 없이 추모에 함께하실 수 있도록 분향 위치를 계단 아래로 옮기고 제단은 국화꽃으로 정성스럽게 단장했습니다. 세대와 시대를 아우르는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주변 수목도 정비하며 행사 전반을 꼼꼼히 살폈습니다.이처럼 작은 배려 하나하나가 오늘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렇게 준비할 수 있도록 너그럽게 이해해주신 춘천의 모든 보훈 단체장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늘 이 자리를 함께하는 젊은 세대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이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그 깊은 희생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다짐이 단지 기억에 그치지 않고 그분들의 정신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따뜻하게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다시 한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감사합니다. 자세히 보기청오 차상찬 추모제
안녕하십니까. 춘천시장 육동한입니다. 오늘 우리는 춘천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언론인,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계몽가인 청오 차상찬 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 붓으로 진실을 밝히고 글로써 민족의 앞날을 밝혀주신 분입니다. ‘개벽’을 비롯한 수많은 잡지를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방정환 선생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이끌며 미래 세대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춘천이라는 도시는 그 정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시립도서관과 청소년도서관의 ‘차상찬 서가’, 시민과 함께하는 이야기길 조성 등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선생님의 정신을 가까이 느끼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고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청오 선생님께서 남기신 뜻을 오늘에 맞게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이 도시의 미래가 되고 희망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추모식이 청오 차상찬 선생님의 높고 깊은 뜻을 되새기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의 정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살아 있습니다. 그 뜻을 이어받아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해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추모사를 마치며, 한 분을 더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춘천 의암공원에 세워진 차상찬 선생님의 동상은 월곡문화재단의 뜻으로 지난 2015년 어린이날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누구보다 깊이 품고 함께해 주셨던 분, 바로 선한 우리의 벗, 고(故) 김현식 이사장님입니다. 김현식 선생님은 동상이 세워질 때에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끝내 사양하셨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깊은 마음으로 선생님의 뜻을 받드는 데에만 힘을 다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이 남긴 따뜻한 마음과 발자취를. 올해 차상찬 추모제를 맞아, 김현식 선생님의 이름을 새롭게 동판에 새겨넣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가만히 채우고, 마음을 다해 이어가고자 합니다. 성오 차상찬 선생님의 뜻, 그리고 선인(善人) 김현식 선생님의 마음. 두 분이 남긴 그 따뜻한 울림을 우리 모두 함께 품고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세히 보기6·25 참전유공자 기념탑 제막식
존경하는 6·25 참전유공자 여러분, 그리고 내외빈 여러분. 춘천시장 육동한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6·25 참전유공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멀리서 와주신 손희원 6·25 유공자 협회장님 너무 감사합니다. 강원도지부장 박영택 지부장님 감사합니다. 오진영 국가보훈부 보훈문화정책실장님 고맙습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평생을 6·25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한 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그는 곧장 춘천고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세웠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단호히 뜻을 밝힌 뒤, 주저 없이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충분하지 못한 훈련을 마친 채 곧바로 치열한 전투에 투입되었고, 그 속에서 전우의 죽음을 목격하며, 끝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의를 더욱 깊이 다지게 됩니다. 그날 이후, 6·25는 그의 삶 전체를 이끄는 뿌리이자 중심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봉사와 국가안보, 그리고 후세를 위한 일에 묵묵히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장학금도 기탁하시고 어려운 이를 위해서 평생을 나누고 도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마음이 이어진 삶의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오랜 시간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6·25 참전 기념탑 건립이었습니다. 춘천은 춘천대첩의 성지이자 전쟁 초기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습니다. 바로 그 곳에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탑이 없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그 길을 더 강하게 나서게 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마음을 다졌고, 필요하다 생각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발걸음을 옮겨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혹여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 탑을 보지 못하고 죽을까 매일 걱정하며 애타는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정성과 열망은 마침내 하늘에 닿았습니다. 작년 2월, 비로소 기념탑 건립이 확정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가 흘리신 감격의 눈물은, 지금도 제 가슴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기념탑 건립이 논의되던 초기부터, 그는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일인 양 정성을 다해 챙기셨습니다. 탑의 디자인에도 그의 구상과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매일 현장을 찾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고, 일하는 사람들을 격려해 오셨습니다.그리고 오늘, 그 염원 속에 기다려 온 바로 오늘을 이 자리에서 함께하고 계십니다.그 분은 바로 제 앞에 계신 염기원 회장님이십니다. 바로 이 자리를 있게 만드신 주인공이십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이 탑이 곧 염기원이고, 염기원이 곧 이 탑입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모든 참전용사 여러분. 여러분 하나하나가 염기원입니다. 그리고 이 탑에는 3,256분의 참전용사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분들의 희생과 열망과 나라 사랑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 탑이 소중합니다. 이 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닙니다. 한 세대가 남긴 책임의 기록이자, 시간 위에 세워진 존경의 증표입니다. 염기원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참전용사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바칩니다. 그리고 이 탑을 찾는 모든 이들이 여러분들의 희생과 나라사랑을 배우고 기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자세히 보기2 / 3